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앙리 4세 (문단 편집) ==== 후대의 미화 ==== 종합해서 볼 때, 왕권 강화에 힘써 귀족 반대파의 미움을 사고, 종교적 신실함에 대한 의심으로 종교인들에게 버림을 받았으며, 문란한 생활과 세금 인상, 매관매직으로 국민의 원성을 샀다.[* 물론 앞서 보았듯 종교 문제도 쉬운 문제가 아니었고, 문란한 생활은 결정적으로 미움받는 부분은 아니었으며, 매관매직은 적어도 당시의 [[부르주아]]들에게는 환영받을 만한 일이었다.] 하지만 그의 극적인 죽음은 앙리 4세를 단숨에 추잡스러운 인간에서 '''[[순교자]]'''의 반열에 올려놓았다. [[예수회]] 극렬 추종자 프랑수아 라바이약의 암살로 인하여 국민의 증오는 앙리 4세에서 [[예수회]]와 암살의 배후로 추정되는 [[스페인]] 왕국으로 옮겨갔다.[* 사실 정치적 성공과는 무관하게 암살된 리더들을 보면 대부분 존경받거나, 적어도 의견이 갈리는 인물들이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